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와할랄 네루 (문단 편집) == [[에드위나 애슐리|마운트배튼 백작부인]]과의 관계 == [[영국]] 문화에 익숙하여 [[신사]]적인 태도를 갖추었고, 키도 장신인데다[* 네루의 신장은 179cm인데, 오늘날 인도 남성의 평균은 165cm이기에 오늘날로 따져도 장신이라고 볼 수 있다.] 미남이다 보니 주변에 여자들이 꼬였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에드위나 애슐리|에드위나 마운트배튼 백작부인]]이었다. || [[파일:idUTzjM.jpg|width=100%]] || || 네루가 [[담배]]에 불을 붙여주는 여성이 [[에드위나 애슐리|에드위나 마운트배튼 백작부인]]이다. || 그녀는 바로 [[인도 제국]]의 마지막 총독이자 [[인도 자치령]]의 초대 총독이었던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1900~1979.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이었던 [[필립 마운트배튼|에드버러공 필립 마운트 배튼]]의 삼촌이며,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으로 여왕의 친척이기도 했다. [[IRA]]의 폭탄테러 공격으로 자신의 요트에서 끔살당했다.]의 아내였다. 네루와 에드위나는 1947년([[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해)부터 관계가 가까워진 것 같다. 인도에서는 육체 관계는 없고 [[플라토닉 러브]]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루이와 에드위나의 두 딸은 "직접 본 게 아니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에드위나와 네루의 성격으로 봐서 실제로 육체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루이와 에드위나 부부의 두 딸 패트리샤와 파멜라, 특히 파멜라는 네루와도 아주 친해서 두 사람의 증언을 마냥 증거가 없다고 무시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네루와 에드위나 두 사람의 애정 문제를 떠나 네루의 연령 때문에 실질적 육체 관계는 어려웠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재미있는건 루이 마운드배튼 백작도 두 사람의 만남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묵인했다. 네루는 에드위나 뿐만 아니라 루이 마운트배튼과도 굉장히 친했는데, 루이와 에드위나 모두 자유로운 연애관계를 신봉했던 관계로 상대방의 성생활에서는 간섭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루이와 에드위나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양해 아래 자유롭게 성생활을 누렸고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영국 상류층에서는 거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 배우자 외 정부를 두는 것은 유럽 귀족층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그렇다고 대놓고 하지는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이로 인해 사생아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 때문에 발생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리처드 3세#s-7.4|리처드 3세의 부계 후손 문제]]다.][* 그래도 에드위나 소생의 두 딸은 모두 생물학적으로 루이의 자녀들이 맞다. 특이한 예를 하나 들자면 루이의 정부였던 젊은 여성 중 하나는 동시에 에드위나의 동성애 상대였던 경우도 있었다.] 이는 사실 도덕적으로 보면 좋진 못한 행동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마운트배튼 백작 부부와 네루의 독특한 인간적 관계는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유혈사태나 특별한 장애없이 '''일이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독특한 관계이다 보니, 훗날 [[할리우드]]에서 이 로맨스(불륜)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려고도 했으나 인도 정부의 요청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해도 네루란 거물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기엔 너무 민감하기 때문이다. 인도뿐 아니라 영국 왕실의 인척이 엮여있으므로 아마 영국 왕실도 싫어했을 것이다. 여담으로 태국의 국왕과 서양여인의 러브스토리인 <왕과 나> 나 <애나 앤드 킹> 같은 작품도 태국인들은 왕실모독이라며 굉장히 싫어했으며 상영금지 처분을 당했다. 다만 애나 레오노웬스가 [[라마 4세]]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눴다는 건 애나 레오노웬스 혼자의 주장일 뿐 증거나 증인이 하나도 없는데 비해 에드위나와 네루가 아무리 못해도 플라토닉한 연인 관계였다는 증거와 증인은 차고 넘친다. 마운트배튼 백작부인의 최후는 다소 허무한데, 인도 독립 이후 1960년 남편과 함께 당시 영국령 북[[보르네오]](현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 시찰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호소하며 잠을 자러 갔는데 파티 다음날 아침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영결식은 평소 자신이 죽으면 고향 바다에 수장해달라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영국 포츠머스 바닷가에서, 영국 구축함 HMS 웨이크풀 호 선상에서 치러졌다. 이때 네루는 인도 해군의 [[구축함]]을 2대나 보내서 그녀의 유해를 호위하도록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에드위나 개인에 대한 사랑도 있었겠지만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이 공식적으로 인도 자치령의 초대 총독(사실상의 초대 국가 원수)이었기 때문에, 에드위나도 인도 자치령의 초대 영부인이 되어 네루도 이에 걸맞는 예우를 해준 것이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리]]가 [[무함마드 알리 진나]]로 분했던 파키스탄 영화 진나(1998)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나오는데, 네루와 마운트배튼 백작부인이 바람 피는 장면까지 묘사하고, 대인배 진나가 이런 추문을 이용함으로 저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216186-0696884D000005DC-200_468x552.jpg|width=100%]]|| || 세 인물의 관계가 매우 잘 드러난 사진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